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넬슨 록펠러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[[1908년]] 미국 [[메인 주]] 바하버에서 태어났다. [[다트머스 대학교]]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가문의 비즈니스와 자선사업을 도우며 뉴욕 근대미술관장 등을 지내다 [[FDR]], [[트루먼]] [[민주당(미국)|민주당]] 행정부 시절 국무부 남미 담당 차관보, 보건교육후생부 차관 등을 지냈다. 이후 [[1954년]] [[공화당(미국)|공화당]] [[아이젠하워]] 대통령 특별보좌관에 임명됐다. 그렇게 1956년까지 보좌관직을 수행하다 [[1958년]] [[뉴욕 주]]의 주지사 선거에 당선되어 [[1959년]]부터 뉴욕 주지사로 지냈고, 재선, 3선, 4선에 성공해 [[1973년]]까지 뉴욕 주지사로 있었다. 이시기 그는 공화당에 큰 영향력을 끼쳐 이른바 '''[[록펠러 공화당]]'''이란 당내 리버럴 파벌이 생길 지경이었다. [[파일:넬슨 록펠러와 키신저 2.jpg|height=400]] 1975년, 넬슨 록펠러와 [[헨리 키신저]]. 키신저는 록펠러 공화당 소속이였다. 키신저가 대외 정책에서 벌인 각종 내정 간섭이나 정치 공작 작업 때문에 극우로 오해할 수 있는데, 키신저는 내정 부분에선 중도 온건 성향이었다. 사상은 공화당내 리버럴 포지션으로 [[낙태]], [[동성애]] 등 각종 사회 이슈에 온건적이며, 시장만능주의, 감세지상주의를 경계하고 복지 정책 등에 있어 정부의 역할을 중시했다. 이런 그의 노선은 1980년대 [[신자유주의]]를 기치로 내건 이른바 [[신보수주의]]자들이 실권을 잡기 전까지 공화당에서 상당한 세력을 갖추고 있었다. 하지만 록펠러는 [[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]], [[1964년 미국 대통령 선거]], [[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]] 대선 경선에서 모두 떨어진다.[* 60년과 68년에는 닉슨이 강해서 어쩔 수 없었지만 64년에는 불륜 의혹 때문에 [[배리 골드워터]]에게 발목이 잡히고 만다.] 1970년대 [[리처드 닉슨]] 대통령의 사임으로 [[미국 부통령|부통령]]이던 [[제럴드 포드]]가 대통령이 되어 부통령직이 공석이 되자 포드에 의해 부통령에 지명되었다. 허나 [[1976년]] 미국 대선에서 포드를 누르고 [[지미 카터]]가 당선되자 부통령직을 퇴임했다.[* 선거 전부터 이미 재선 출마를 포기한 상태였다. 1976년 대선에서 포드의 러닝메이트는 넬슨 록펠러가 아니라 이후 1996년 대선에서 클린턴에게 패하는 [[밥 돌]]이었다.] 돈도 많겠다 퇴임 후에도 유유자적하게 산걸로 보이는데, 퇴임 2년 후인 [[1979년]] 1월 26일 본인의 보좌관인 메건 마섁(Megan Marshack)과 함께 있다가 [[심근경색]]으로 [[사망]]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